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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및유래

선사시대

  •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ㆍ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으나, 고인돌ㆍ석부ㆍ선돌 등 청동기ㆍ철기시대의 것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 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 백제시대에는 인진도군(因珍島郡)이라 칭하여 관부는 현 고군면 고성에 있었으며 영현(領縣)으로 현 고군면 일대와 군내면 방면에 도산현(일명 抽山․ 猿山)과 현 임회면 방면에 매구리현(買仇里縣)이 있었다.
  • 의자왕 20년(서기 660년) 7월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항복하게 되어 원산현은 당나라가 현 나주에 설치했던 대방주의 도산현(徒山縣)에 속했다.

통일신라시대

  • 신라시대에는 경덕왕 16년(757년)에 인진도군은 진도현으로 바꾸고 도산현을 뇌산군(牢山郡)으로 승격 독립하여 매구리현을 첨탐현(瞻耽縣)으로 바꾸어 뇌산군(牢山郡)에 따르게 하였다. 이때 이미 무안군 영현이 되었다는 고려사 지리지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 고려시대 태조 23년(940년) 3월 전국에 행정구획과 주․군명을 고칠때에 뇌산군(牢山郡)을 폐지하고 뇌산군은 가흥현, 첨탐현은 임회현, 진도현을 두되 나주에 소속시켰다. (물론 이시기를 현종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찬기록인 「옥주지」에는 진도의 치소를 용장으로 옮기고 옛진도현을 외이현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종 11년(1270년) 6월에는 삼별초 배중손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이해 8월 용장사를 도읍으로 정하고 몽고군에 저항하였으나, 9개월만인 1271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의 장군 김방경이 몽고 원수 혼도 등과 함께 침입하여 삼별초를 토벌함에 진도가 함락되어 주민의 대부분은 몽고로 잡혀가고 진도는 거의 빈터가 되었다. 그 후 설상가상으로 충정왕 2년(1350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왜구의 침입으로 모든 주민의 불행과 고난이 겹쳐 내륙으로 피난을 하여 월악(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명산(현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과 제3차로 금산(현 해남군 삼산면)으로 피난을 하여 본도에 돌아오지 아니함으로 금산에 관부를 두어 80년간 진도에 행정기관을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조선시대

  • 조선시대에는 태종 9년(1409년)에 해남현과 합하여 해진군으로 칭하여 오다가 세종19년(1437년) 해남현과 분리하여 다시 진도군으로 되었으며, 그해 6월 29일에는 초대군수 양경이 부임하여 고성 부근에 성을 수축(修築) 치소를 삼고자 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이 현 군청 소재지만 못하여 이곳에 관부설립공사를 추진 완공, 경신년(1440년)에 지금의 진도읍으로 관부를 옮겼다. 그 후 수차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군에 예속된 육지부의 삼촌면(현 해남군 삼산면), 명산면(현 영암군 시종면)과 본도 내 군내면(古 도산현), 고군면(古 외이현), 의신면(古 의신향), 임회면(古 임회현), 읍내면(읍 성내외리), 목장면이라 하였다.
  • 1666년(현종3년) 향교의 전패를 잃어버린 일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만에 복구되었다.
  • 1866년 진도군은 진도부로 승격, 4군 9진을 거느리고 해남 화원면을 복속시켰으며 읍내면은 부내면이 되었으나 1873년 다시 군으로 강등되었다.
  • 1896년 진도군이 전라남도에 속하면서 3등군이 되었다. 군내면을 군일․ 군이 양면으로 고군면을 고일ㆍ고이 양면으로 의신면을 명금․의신 양면으로, 임회면을 임일․임이 양면으로 목장면을 지산면으로 가사도면과 조도면을 각각 신설하고 영암의 명산면과 해남의 삼촌면, 무안군의 도초, 안창, 기좌면을 합쳐 전체17개면이 되었다.
  • 광무10년(1906년)에는 육지부의 명산면과 삼촌면이 영암, 해남군에 각각 이속되었다.

조선시대 이후

  • 1914년 행정구역 폐합을 단행하여 도초를 무안군에 이속 본군을 진도면(前 부내면), 군내면(前 군일ㆍ군이면), 고군면(前 고일ㆍ고이면), 의신면(前 명금․ 의신면), 임회면(前 임일ㆍ임이면), 조도면(前 가사도면 ․ 조도면), 지산면(前 목장면)으로 존치시켜 7면 101리를 두었다. (안창, 기좌의 환원 기록이 명확치 않다.)
  • 1963년 1월 1일 조도면 마진도리가 신안군 장산면에 편입되었다.
  • 1973년 7월 1일 군내면의 수역, 수유, 해창, 산월 리가 진도면으로 편입되었다.
  • 1975년 1월 1일 군내면 녹진리에서 대야리를 분리 226개리가 227개리로 되었다.
  • 1979년 5월 1일 진도면이 진도읍으로 승격되어 1읍 6면 227개리가 되었다.
  • 1980년 2월 2일 진도읍 산월리에서 내산리, 고군면 가계리에서 용호리, 의신면 접도리에서 수품리가, 지산면 봉암리에서 상봉암리가 각각 분리되어 227개리에서 231개리로 구분되었다.
  • 1982년 1월 1일 의신면 구자도리(狗子島里)를 구자도리(九子島里)로, 침계리의 수용소리를 진설리로 개칭하였다.
  • 1983년 2월 15일 조도면 만재도리와 가사도리 중 고사도와 평사도 및 부속도서를 신안군에 편입시키고 231개리를 229개리로 개편하였다.
  • 1986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도읍 사정리를 사정1리, 사정2리로, 전두리를 전두1리, 전두2리, 청용리로, 임회면 석교리에서 고방리, 구분실리로, 지산면 수마리를 수양리, 마사리로, 조도면 창리에서 어류포리가 각각 분리되어 229개리에서 236개리로 되었다.
  • 1987년 1월 1일 임회면 염장리가 진도읍으로 편입되었다.
  • 1990년 8월 1일 신안군에서 저도 외 5개 섬이 진도군으로 편입되었다.
  • 1992년 5월 9일 의신면 도목리가 도목리, 도항리로 접도리에서 원다리, 임회면 죽림리에서 동헌리, 지산면 소앵무에서 백연동리, 심동리를 상심동리, 하심동리로 분리되어 236개리가 241개리가 되었다.
  • 2005년 군내면 월가리에서 정거리가 분리되어 241개리가 242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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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7-05-23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