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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작성일: 2016-01-25 12:24

제목 희망을 일구는 오일시 청년들의 봉사활동
작성자
박영관
조회
1993

희망을 일구는 오일시 청년들의 봉사활동 첨부#1

희망을 일구는 오일시 청년들의 봉사활동 첨부#2

지난 1월 19일부터 진도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23일부터 눈이 쉬엄쉬엄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늘(1월25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 근래 이렇게 눈이 많이 오기는 처음인 것같다. 길이 막혀 도로엔 차의 경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도 눈이 많이 와서 차는 물론이고 사람들도 걸어다니기가 불편하다. 마당을 쓸고 골목길을 쓸었다. 그런데 포크레인과 덤프 트럭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쳐다보니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오일시 이장 곽문섭 님과 박정래 님, 박정환 님 세 분이 열심히 눈을 치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이런 청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일시의 미래와 진도의 미래를 책임지고 가는 이런 청년들이 건재하는 한 진도의 청사진은 밝게 빛나리라는 믿음이 섰다.
다른 나라 예화 한토막을 소개하겠다. 독일이 한 때 프랑스에 점령되었다. 이때 독일을 일깨운 한 선지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다. 교육전쟁을 주도하였다. 1807년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 고함", 이라는 책을 썼다. 그가 없었다면 독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애국심이 소멸되면 국가도 잃는다
그는 피를 토했다, 독일이 프랑스에 점령된 것은 오직 하나, 독일 국민 모두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면서 부패-방탕했기 때문이라고 설교 하였다. 해결책이 무엇이냐? 교육이라고 했다. 그는 교육을 통해 애국심과 국가혼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를 믿고 동조한 독일인들이 점차 늘어났다. 동조자들이 없었다면 그의 교육전쟁은 물거품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호소한 교육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64년이 지난 1871년, 독일의 몰트케 장군이 프랑스를 점령했다. 독일 국민들은 축제에 들떴다. 돌아오는 영웅 몰트케(Helmuth Karl B. von Moltke, 1800~1891)원수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때 과묵한 사상가로 알려진 몰트케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공이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라고 하였다.
예를 하나 더 들면 덴마크도 한 때는 영국과 노르웨이 스웨덴까지를 지배하던 북해제국이였던 때도 있었으나, 1864년 프로이센(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해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잃고 소국으로 전락한다.이때 등장하는 사람들이 유명한 구룬트비와 달가스이다. 국민고등학교(Folk High school)를 설립,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교육하고,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라는 구호 아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낙농 국으로 부유해진다. 국토면적이 약 43,000평방 킬로미터, 인구 약 540만, 아주 작은 나라다. 하지만 평화주의를 주창하는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치는 강국이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건전한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고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우리나라와 우리 진도군도 벤처마킹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은 지도자들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면 동참할 의지가 충분하다. 미래의 목표가 분명한 슬로건으로 청년들의 앞날을 훤히 밝혀주자. 이 일은 기성 정치인과 사회지도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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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23-02-07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