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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작성일: 2019-04-10 20:20

제목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3월 현장 직무연수 감사합니다(진서심해설사님 글)
작성자
장재호
조회
507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3월 현장 직무연수 감사합니다(진서심해설사님 글) 첨부#1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3월 현장 직무연수 감사합니다(진서심해설사님 글) 첨부#2

고향의 참모습을 더듬다
 
맑은 하늘
찬란한 햇살
따뜻한 겨울날 오랜만에 갖는 휴일을 어릴 때 제일 높게 보아왔던 선황산을 몇몇 지인들과 함께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류저수지 옆, 벽파로 향하는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니 아무렇게 자라 너부러진 마른山草(산초)들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연상하게 한다.
도로 근접지역까지 멧돼지의 접근이 역력하다. 질척한 곳에 멧돼지의 발자국과 주둥이로 뒤엎은 흔적들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이 잘 가꾼 농작물을 초토화시키는 건 아무것도 아니며 피해가 보통이 아니겠다 싶다. 우리 어릴 때 그림에서나 봤던 멧돼지가 이렇게 ()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다.
정비되지 않은 길이지만 다행히 이곳의 주민들이 더러 산행을 한 덕분으로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아예 전정가위를 들고 나선 우리 일행 중 한 분은 성가시게 하는 나무 가지, 맹감나무 등을 자르며 앞장섰다.
 
널찍한 바위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롭다.
백중날엔 보리빵을 싸서 이 바위에 올랐고 추석날엔 송편을 싸서 친구들과 놀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도란거렸을까
뭔가 종알종알 했었던 건 분명한데 내용은 기억에 없고 대신 그 때의 볼이 통통한 친구들의 모습은 역력하게 떠오른다. 이름까지도…….
그러나 이건 후세에 평화로운 추억이고 이곳에선 위기촉발의 긴장감이 도는 군사시설의 전방 초소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라고 어린 시절 많이 들었다.
널브러진 바다와 들이 한눈에 들어와 멀리 적군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자리이며 또한 빠른 시간 안에 본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있는 곳이기에 이름도 망을 본다는 망바위가 아닌가.
 
조금 더 거칠어진 수풀을 헤치고 약간 가파르게 오르니 석치정이다.
예쁘게 만들어진 팔각지붕이 우리일행을 갑자기 호사스럽게 만든다.
멀리 진도타워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그 아래 멋진 조형미의 진도대교는 육지와 잇게 했다고 허리를 젖히며 한껏 뽐내는 사람처럼 당당함을 보인다.
금강산의 한 봉우리가 남쪽으로 달려 내려와 우뚝 자리 잡은 금골산이 멀리서 멋을 내어 이곳을 바라본다.
큰 강 같은 명량수로, 질펀한 마로해는 큰 호수 같다. 건너 해남 땅은 오히려 섬처럼 보인다.
 
한 때, 하얀 두루마기차림의 이 주변의 어르신들이 여기에 올라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 風流(풍류)를 즐겼던 곳이다(漢學을 하셨던 우리 祖父님도 여기 오르셨겠지 사진에서만 본 祖父님 얼굴이 떠오른다).
 저 너머 한 눈에 보이는 둔전 앞까지 다 파란 바다였을 때 금골산과 조화되는 풍경은 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을 것이고 저절로 ()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간척이 되어 논이 생기고 그 덕에 우리는 쌀밥을 먹고 잘 자랄 수 있었다.
 
살짝 내리막이 시작되어 지나니 솔숲이 울창하게 하늘을 가린다.
떨어진 황금색 솔잎으로 바닥이 푹신하다.  
골든 카펫을 걷는 슈퍼스타가 되어 볼까나” 한마디 말로 일행  모두가 웃고, 다 같이 갈퀴나무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런 때, 겨울방학이 되면 동무들과 근처 산에서 긁고 또 긁고 피나게 긁으며 갈퀴나무를 하던 우리들의 그 시절. 생활이 풍요로워진 만큼 소나무 아래 떨어진 솔잎의 푹신함이 비례한다. 몇 년 동안 쌓이고 쌓였을까 남의 나라에서 들여온 기름이 우리의 추위를 해결할 때부터 쌓였겠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고 고요히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의 통행이 없지만 연동사람들이 용장을 거쳐 오일장이나 읍을 갈 때 학생들의 등교 길로 오랫동안 이용하였던 길의 흔적이 눈에 띤다. 워낙 오래 사용했기에 얼른 없어지지 않았는지.......아니면 대전투로 생을 마감한 ()이 서려서인지(이곳에서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대전투를 벌였다 해서 대투개재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 길이 벽파앞바다에서 용장성까지의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길은 가파르게 험해지고 흙과 돌멩이들이 주르륵 미끄러지게 한다. 우리일행은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양옆의 나뭇가지를 휘어잡고 오른다. 머리에서 이마 등허리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오늘은 완전 봄날이다.
오르막 등성이를 거의 오르니 대숲이 하늘을 가린다. 가느쪽쪽한 신우대가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여기에 서 있으면 나도 가늘어지며 키가 크려나? 대나무에게 물어본다. 대답은 안 한다. 길도 없어진다.
그나마 누군가 대나무 몇 개씩 베어 낸 덕으로 어렴풋이 찾아갈 수가 있다.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던 시대에 각 지역에서 화살용 대나무를 심게 하여 ()에 납품했다는데 여기가 바로 해당지역이었다고 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의 설명이다.
 
터널 같은 대숲을 벗어나 약간 오르니 아~ 가을하늘 보다 더 파란 하늘과 맞닿은 정상이다. 바위는 祭單(제단)과 흡사하다.
()에 의하면 일찍이 송나라 상인들이 긴 航海(항해)길의 無事(무사)를 바라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용장산성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기에 많은 흔적들이 散在(산재)해 있다.
 
정상 왼쪽 아래 옴팍한 곳에 집터가 있다. 삼별초가 온 후에 용장성 자리에 있던 절을 옮겨와 있었다고 하여 절골이라고 불린다. 축대며 채마밭 흔적이 역력하다.
 
용장대궐터는 저만치에서 계단식 논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칠백 몇 십 년 전 개경의 만월대와 같은 구조로 지어 아름답게 꾸며진 대궐은 터만 남아 긴 세월 바람 안고 허허로운 숨결만 조용히 간직 하고 있다.
들녘 듬성듬성 초록색은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맞서 여문 단맛을 품은 배추와 대파가 대도시로 시집가기 위하여 신부수업 마친 예비신부처럼 단정하게 차례를 기다린다.
 
사방을 휘 둘러 바다 건너 해남 성산리의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성산리 앞 바닷가에 매의 부리를 닮은 바위(매부리바위)가 연동마을 뒤쪽 바닷가에 꿩 꼬리모양을 한 부채처럼 생긴 바위(꿩선부리)를 잡아채려고 하여 성산마을에는 인물이 나고 연동마을은 인물이 나기 어렵다고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성산마을은 포항의 조선내화주식회사의 사장 이훈동씨의 고향이며 조선내화회사의 모태였다고 한다. 성산광산은 지금도 채굴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바닷가의 대대적인 공사로 인하여 매부리바위는 없어지고 그 덕분에 연동마을에서는 인물이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예전의 사람이 되어 기도도 하고 삼별초군의 심정이 되어 보기도하고 야냥개 부리다가 접어든 내리막길은 위험하다. 제법 스릴이 있다.
비탈진 바위틈을 헤집고 비껴가며, 살짝 미끄러지면서 내려가는 맛이 은근히 쏠쏠하다. 자칫 잘못 디디면 큰일이 발생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짜릿한 느낌 그 맛은 묘미다.
비스듬히 자리한 듬직한 바위에 튼실하게 자라는 부처손이 통통하다. 정말 부처님의 손이 저랬을까? 저 손처럼 넉넉하게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용장성에 가까워지니 길이 편하여 자분자분 발걸음이 가볍다.
내 고향의 가장 높은 산 선황산의 참모습을 더듬고 내려오는 기분은 엄마 품을 더듬은 것처럼 넉넉하고 평화롭다.
 
꽤 힘들었지만 눈만 뜨면 올려다보았던 산에 올라서서 사방을 내려다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산행이었다
.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 진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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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23-02-07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