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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16-03-01 11:22

제목 진도의 독립운동가
작성자
박종호
조회
2299

진도의 독립운동가

진도에서의 독립운동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은 지역 인사, 그리고 진도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귀향하여 벌인 운동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말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한 활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국권을 되찾고자 한 항일운동가를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와 진도 유배인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진도에 유배된 인물로는 강영화(姜英華)·강인필(姜仁必)·박윤식(朴潤植)·김덕진(金德鎭)·민영팔(閔泳八)·민종식(閔宗植)·양한규(梁漢奎)·이기(李沂)·최동식(崔東植)·이필상(李弼相)·안국선(安國善)·손정도(孫貞道) 등이 있다.
해학 이기는 계연수의 한단고기를 감수한 분이다. 이들은 거의 을사오적 암살단 또는 정부 주요 인사 암살 등 초강경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거나 그러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1900년에 강영화가 진도에 오기 시작하여 1912년 손정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도에 살면서 진도 주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04년 진도에 온 기독교인 안국선도 그러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4년 10월 19일자 『황성신문』에는 ‘진도에 신학 연구와 풍속 개량을 목적으로 친목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회원을 대표로 안천강(安天江)이라는 인물과 박봉우(朴鳳禹)· 소문규(蘇文奎)· 박영배(朴永培)·최기원(崔基元) 등 이십여 인이오, 매월 한 차례 개회하야 강연책선(講演責善)한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천강은 안국선의 호이다. 여기서 안국선과 함께 활동인 현지인 박봉우는 진도읍 북상리 사람으로 후일 아들 박두재(朴斗在)가 진도의 독립운동의 일선에 나서게 된다.
손정도는 1912년 하얼빈에서 조선총독 데라우찌[寺內正毅] 암살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진도에 유배되었다. 1914년 유배에서 풀릴 때까지 진도에 있는 동안 복음 전파와 독립정신 고취 등 진도 주민의 항일의식 고취에 노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정도는 국내에서 1919년 3·1운동에서 참여했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손정도의 활동과 이력이 진도 현지인들의 정신적 토양으로 작용한 것은 틀림없겠으나 구체적인 영향을 실제로 추적하기는 어렵다. 손정도의 유배 당시 12세였던 정경옥이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진도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는 영광보통학교 교사로 영광에서 활동한 이병영과 일본 오사카[大阪]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박봉석이 있다. 진도 현지에서는 미국 유학으로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한 정경옥을 비롯하여 박종식·박종협·박두재·박동인·박석현·박종준·조규선·곽재술·곽재필·장부전·이재실·박사배·이광우 등이 있다. 또 여성으로는 박종금이 있고, 현재 생존자로 이기환이 있다.
물론 이들만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일제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산으로 은거했다가 해방 후에 나와 미군정 때 진도 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이 있다. 또한 진도읍 북상리에서 초기 일본인 이민 오미랑조(吾未朗助)를 총살했던 주민들도 있었다.(진도향토문화전자대전 발췌)
3.1운동 과 독립운동을 한 진도인들은 진도군지 등에 “박봉석(28년 박종협과 일본 밀항)은 오사카에서 조선인 20명과 함께 선두 연명발기로 조선적화당 비밀결사를 주도했다” 하였으며 검거 2년 1개월 26일째 오사카형무소에서 사망. 200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
박두재-진도읍 북상리 출신. 곽재술, 곽재필 조규선 박종금에게 사회운동을 지도함. 황해도 해주출신 여성항일운동가 주용해와 결혼.
박동인-동외리 출생. 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시 광주농업 22명 시위주동자 중 한명. 33년 1월 결성된 진도 최초 비밀결사 ‘자각회’ 교육부장 역임.
이외에 김경석 김상규(석현) 박사배(조도 창리) 박석현 박종금 박종식 박종준 이기환 이병영 이광우 이재실 이일근 조규광 조규선 등 많은 분들이 계셨다.
정경옥은 1903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고교 재학 중 삼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하여 고향에 내려갔다. 이때 한학을 배우던 고향 친구들과 함께 ‘독립신문’ 등을 제작·배포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감옥생활 중 성서를 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후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개렛신학교에서 학사학위,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조직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귀국하여 모교인 감리교신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그런데, 한창 대학에서 명강의로 학생들의 신망이 아주 높던 정경옥은 1937년 3월 불현듯 교수직을 버리고 고향 진도로 내려갔다. “내가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남의 자녀를 가르치면 그는 머슴이오 교육자가 아니다.” “기계를 틀어놓은 것 같은 강의를 반복하는 동안에 해마다 말은 자라나 생명은 죽어서…” 밖으로는 명성이 자자했으나 내면으로는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간 자연 속에서 살면서 ‘그는 이러케 살엇다’를 저술했다.
그 외의 저서로는 한국 감리교회 신앙고백인 ‘교리적 선언’을 해설한 ‘기독교의 원리’(1935년)와 한국 최초의 조직신학 개론서인 ‘기독교신학개론’(1939년)이 있다. 1939년 봄 다시 서울로 올라와 감리교신학교 교수직을 맡았지만, 이듬해 일제에 의해 폐교 당했다. 그후 만주로 떠나 사평가신학교 교장을 역임하다가, 귀국하여 광주중앙교회에서 목회하였고 1945년 4월 42세 이른 나이에 복막염으로 별세했다. 진도 최초로 국악원을 개설했던 고 정의현씨가 아들이며 그 자제로 정상원(서울), 정영완 정옥자(진도 거주) 등이 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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