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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24-01-18 15:42 (수정일: 2024-01-18 15:53)

제목 진도문화원 발간 '진도문화' 113호 폐기를 요구하며
작성자
김남용
조회
459

오늘 이세영 교수께서 [진도문화]113호에 게재했다는 논문 원문을 메일로 받아보고 글을 적습니다. 비문이나 사적 기록 등에서 오류를 찾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학자적 양심이라고 생각하고 동의합니다. 오류가 있다면, 향후 검증을 통해 수정하는 것으로 정리되겠지요. 
 
이세영 교수님의 논문에서 결국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래에 캡쳐해 올린 것처럼, 원고 21p~22p까지입니다.  






그런데 '굴포당=배중손당'이라는 결론을 내리까지 무슨 '논증'을 하셨다는데, 이 원고에서 논증의 증거물(나머지는 연구자의 일방적 주장)은 '굴포신당유적비'이고, 그 유적비문을 근거로 해서 세워진 게 정충사인데, 이 내용들은 이미 재판까지 가서 결론이 난 거 아닌가요? 굴포당제를 지내는 주민들을 찾아가서 현장 설문을 하셨는가요? 윤씨집안도 아닌 사람들이 면사무소, 군청까지 찾아가서 항의하고 데모한 내력은 직접 들어보셨습니까? 문화재 만들려고 없는 사실 만들어서 비를 세웠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끝내 성공하지 못한 굴포판 삼별초 쿠데타......얼마나 주민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요? 더구나 당을 모시는 분들이었는데. 현장에 답이 있다했지요. 제 생각에는 굴포 남선 신동 마을 한나절만 돌면, 지금 주장하시는 게 너무나 작위적이구나 하시는 걸 느끼실 겁니다.





'고산사' 유래에는 굴포 간척지 논 대다수가 윤선도 집안 간척지라는 물증이라도 있는데,
정충사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당파싸움으로 왜곡된 실록들 들춰봐야 그게 부메랑되어 논리적으로만 궁핍해집니다.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언전 개발했다고 탐관으로 표적이 되어 '평생' 탄핵되었다는 논리가요. 윤선도가 효종, 현종 때 수없이 벼슬을 내려도 거부한 것 때문에 오히려 표적이 된 점들은 안 보이시나 봅니다. 왕명 거절 하면 삼족을 멸하던 시기에요. 정말 아전인수식 해석인 거 모르시나 봅니다. 

삼별초의 진도 천도를 항몽으로 인식하시고, 반중화사상 선양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세영 선생님의 자유겠지요. 
그리고 조선시대 사대외교,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하게 된 점을 생각해 보면, 
변발하지 않고 자주 항몽한 삼별초 정신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꼬딱지만한 나라가 제국주의시대에 자주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주체적 정신은 가져야 하나, 외교는 실리를 챙겨야 하고,
전쟁을 피하는 게 가장 현명한 정치 아니겠습니까?
고려가 천 년을 버틴 게 어디 굴욕외교 때문이었을까요?

주장을 하기 위해, 
왜곡 내지는 조작된 '증거'를 들이밀면서 
지역 향토사학자들를 비토하고, 
사회적 합의가 끝난 사안을 다시 들고 나서는 데는
학자적 양심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래서 진도문화원이 양심선언을 하고
진도향토사학을 폐기한다 발표하지 않을 거라면, 
이 논문이 실린 진도문화 113호를 폐기하고, 
새로 발간해야 한다고 봅니다. 

진도문화원이 원장이 바뀌었다 해서 
자기부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평생회원'으로서 참으로 서글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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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