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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24-01-18 14:05 (수정일: 2024-01-18 14:26)

제목 Re : Re : Re : Re : 진도문화 113호는 폐기되어야
작성자
이세영
조회
113

우선 이메일주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1) 댓글에서 제기한 굴포신당유적비 비기를 쓴 시기는 비기 맨 밑줄에 "양당을 재건하고 유적비와 장승을 세우다"에 의하면 곽남배가 양당을 재건한 것이 1986년 4월이었기에 1986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2) 비기에 윤선도가 약 350년 전에 굴포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논문의 '윤선도 연보'에 비추어 보면 그는 그 시기에 굴포에 올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기록은 굴포마을의 전언을 기록했다고 봅니다. 그러면 다른 기록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고려사 등 관찬기록, 고려사의 김통정에 관한 기록, 당시의 일몰기록 등을 보면 그 사실성을 믿을 수 있다고 봅니다(다만 지금으로서는 그 비가 어딘가에 매장되어버렸기 때문에 확실한 시기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김 형이 고산사의 설립 경위나 작년에 윤선도 감사제를 주도했기 때문에 알고 있을 것이니 그 비의 행방을 알려주십시오)  
3) 그 글에서도 주장했지만,
 해남윤씨가의 굴포농장 경영(20240117).hwp
당집과 당제는 당연히 복원되고 전승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4) 조선시대에 해택 간척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제 책 "조선시대의 지주제 연구"(2018년, 혜안출판사)를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5) 현재 김 형의 처지나 고산사에 대한 입장은 이해하지만 진도문화 113호에 개재되는 제 글의 폐기 여부는 김남용씨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첨언하자면 학계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여러 견해나 학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믿을 만한 것인가는 독자들이 판단합니다. 그러니 김 형도 제 글을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시되 너무 불편해 하거나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술로 포장했다"라는 표현은 삼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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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