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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23-12-26 08:36

제목 명량해전 연구와 해전지역 조사 학술대회(12. 15) 성과
작성자
이세영
조회
152

군민 여러분, 진도문화원(원장 오판주)에서는 앞으로 '명량대첩일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고, 명량해전 지역을 '충무공 이순신 국립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1차로 명량해전 연구와 명량해전 지역 조사를 하고, 그 성과를 가지고 지난 12월 15일에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학술대회장을 가득 메운 군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성황리에 학술대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고, 또 진도군민이라면 반드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학술대회의 결과(종합토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드립니다. 두고두고 꼼꼼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명량해전의 참전 장수들에 대한 연구는 없다. 이순신의 『정유일기』와 『사대문궤』 등의 분석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다.
 
2) 피아 함선들의 기동과 작전상황도에 대한 연구는 없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제장명 교수가 명량해전 당시 조선 수군이 일자진을 폈다는 주장(『이순신 백의종군』)을 제기한 바 있다.
 
3) 연구 문헌들이나 난중일기 번역서들에는 ‘건너편 포(浦)’가 어딘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이순신 함대가 진을 친 곳이 우수영 포구(정진술 견해, 2023)이므로, 건너편 포는 ‘녹진’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명량해전 장소와도 관련하여 연구해야 할 논점이다.
 
4) 이순신이 명량으로 진을 옮긴 이유는 벽파정(碧波亭)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조선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피력하였다. 또한 이순신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는 ‘오늘의 우리를 이른 말이다’라고 한 사실에서도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5) 명량해전 지역 조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드론 촬영을 통해서 ‘별망’(別望)의 위치를 확인한 것이었는데, 그곳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청룡산 정상(해발 74.8미터)이었다.
 
6) ‘당파’는 ‘부딪쳐 깨트린다’라는 의미다. 이순신의 기록을 확인해 보면 총통의 피사체(즉 대장군전, 장군전, 철환 등)로 적선을 깨트린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7) ‘명량해전 철쇄설’(鐵鎻說)은 18세기 이후(李重煥, 영조 41년, 1765년 이후 『擇里志』)에 만들어진 설화다.
 
8) 정유재란시 전라도를 목표로 한 일본군의 전략에 전라도 지역민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싸우다 순절하는 것, 또 하나는 피란하는 것이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의하면 전라도 사람들은 임진년에는 침략당하지 않아 대처하는 법을 몰랐다가 정유년에 침략당하여 큰 희생을 당했다고 하였다. 전라도에 일본군이 바둑판처럼 50곳에 둔을 설치했다고 할 정도였다. 이순신이 칠천량 패전 이후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전라도에 왔을 때 연해지역민들은 배를 준비해 피란하려고 하였다. 이순신이 온다는 소식에 배를 돌려 수군에 합세했었다.
 
9) 이순신이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전라도로 온 이유는 그가 전라좌수사였던 연고로 전라도에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발포만호였던 이력이 있으며 그의 장인이 보성군수였던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는 수군 재건을 위해 보성에 머문 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보성에서 군량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고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지역 유력 인사들과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 놓았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수군의 구성을 보면 승려들과 인근 사족들과 함께 군사가 조직된 것을 보아서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10) 명량해전 장소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제기되었다. 하나는 ‘우수영 해로’라는 것이고(정진술 교수, 2023), 둘은 ‘명량 서북단 쪽의 넓고 긴 해역’이라는 견해다(제장명 교수, 2023). 앞으로 연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 명량해전 대첩 후 이순신의 수군은 서해 고군산도까지 후퇴했는데, 이를 명량해전 기간에 포함시킬 것인지, 또 명량해전 지역에 포함시킬 것인지, 그리고 후퇴를 명량해전 전략전술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2) 지역사 연구 차원에서 진도군민으로부터 명량해전에 관한 고문서, 즉 의병으로 참전한 조상들의 가승(家乘), 공신록권, 문집과 일기, 잡기, 전설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다.
 
13) 명량해전에 대한 외국인들의 연구 성과는 2차 연구사업에서 다룰 예정이다.
 
14) 정유왜란 당시의 벽파울돌목우수영 일대의 지도를 가능한 한 복원하여 명량해전 장소 주위의 해안가 조사와 지표 조사를 한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시굴 및 발굴 여부에 대해서 목포해양연구소와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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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