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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16-06-08 18:01

제목 참깨를 털면서
작성자
박종호
조회
2060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 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참깨를 털면서 느낀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일상적인 소재에서 얻은 체험을 보편적인 깨달음으로 확대함으로써 인식과 체험을 확장하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참깨를 털면서 깨달은 노동의 신선함과 즐거움, 그리고 삶의 지혜를 산문적인 어조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도회지에서 살다 온 시적 화자는 할머니와 함께 참깨를 털면서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나'가 참깨를 터는 일의 태도는 즉, 도시 생활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몸에 스며든 '일확천금(一攫千金)과 한탕주의'의 자세를 꾸짖는 말씀을 한다.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라"라는 말씀은 할머니와 내가 참깨를 터는 것은 참깨를 얻기 위한 것이지 참깨의 모가지가 아니다. 참깨 모가지까지 떨어지면 다시 모가지를 분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내'가 해야 한다. 오랜 지혜로움의 연륜으로 상징되는 할머니가 슬슬 막대기질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김준태(金準泰: 1948-)
베트남전 참전. 1969년 『시인』에 <참깨를 털면서> 외 4편 추천으로 등단.
1969년 전남일보, 1970년 전남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는 『참깨를 털면서』(1977),『나는 하나님을 보았다』(1981),『국밥과 희망』(1983),『불이냐 꽃이냐』(1986),『넋통일』(1986),『칼과 흙』(1989) 등이 있다. 그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석호리 출생. 조선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전남일보, 광주매일 기자, 민족문학작가회의 광주전남회장을 거쳐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나는 저항시를 써도 그 밑바닥에는 할머니에게 배운 밭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이 김준태의 말이다. 그가 밭으로 대변되는 농촌의 모성에 천착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태생적으로 그는 흙의 품에서 자랐다. 그를 길렀던 할머니는 평생을 흙 속에서 몸으로 살아내며 김준태에게 살아있는 교과서의 역할을 했다.
그의 시는 광주의 5월이 한 중요한 전기가 되기도 한다. 당시 광주민중항쟁 때 전남매일신문에 실었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그가 이시대의 역사의식에 얼마나 투철한 시인이었나를 보여주며 이 시를 실으므로 해서 전남매일 신문이 정간되었던 일은 잘 알려진 사건이다.
그가 고향을 떠나있을 때 그는 농촌의 소외와 버려짐을 아프게 절규하는 시들을 쓰게 되지만 그의 정신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는 그 소외되고 짓밟힌 고향에서 더 이상 무너질 수 없는 큰 진실에 당도한다고 말한다.

▷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중략)

“인간이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나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즉 인간의 욕망은 쉽고 빠르게 일순간에 충동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꾸지람에는 이러한 교훈이 담겨 있으며,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시적 화자는 귀중한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김준태 시인과 잠시 통화를 했습니다. 시 ‘참깨를 털면서’는 할머니가 살고 계셨던 진도 고군면 금호도에 찾아가 직접 보고 함께 일했던 경험을 깊은 진정과 울림으로 표현해낸 절창이라고 봅니다. 진도 군민들의 감상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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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