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7화

작성일: 2018-09-15 13:39
강강술래를 합시다
당신은 언제나 내게 둥근 달입니다. 구름과 바람의 시절에도 앞동산 너머에서 마침내 떠오르는 밝은 달입니다. 감나무 잎을 하나 따서 옛 여인네들의 노래를 적습니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강강술래/ 우리 마을에 달 떠온다, 강강술래/ 하늘에는 별도 총총, 강강술래, 대밭에는 댓잎도 총총, 강강술래….”
섬마을에 뜨는 달은 하늘에 떠 흐르는 또 하나의 섬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잊으려 해도 떠오르는 내 하나의 임이었습니다. 길은 굽이굽이 아리랑 길. 삼백예순날 소리가 흐르는 섬.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고지고 누이보다 더 크게 수수밭이 아무리 영글어도, 백년이 지나도 기차도 비행기도 오지 않았던 바구리 섬. 하여 그 섬은 그냥 노래가 되기로 했지요. 송편을 닮은 초가집도 그 초가지붕에 올라 영글던 둥근 박도 시절과 함께 사라져갔습니다. 장날 아니면 누구 하나 쪼구려. 앉아 완행버스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기 힘든 동구 정류장 옆엔 여전히 당산나무가 그 많은 약속들을 나이테에 새겨놓은 사연 잎사귀로 슬며시 내비치기도 하겠지요.
진도는 늘 노래로 부풀어 오르는 달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마을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소리였고 그 소리 속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가위가 다가오면 사람마다 달처럼 고왔지요. 소녀들은 언제부터 달 내음을 냅니다.
처녀들이 한 밤에 넓은 마당에 나와 천천히 그리는 강강술래 원무는 열다섯 밤하늘 굴러온 보름달을 그립니다. 진도와 남해안 옛 처녀 총각들은 휘영청 둥근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동네 또래들과 어울려 달처럼 둥글게 손에 손을 맞잡고 서서 이 같은 노랫말로 이야기를 엮으며 빙글빙글 도는 놀이를 했습니다. 문득 이동주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여울에 몰린 은어떼. 달빛에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천지인의 원형 간결한 메타포가 겹칩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의 굽은 등허리도 그립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잊혀진 얼굴들’로 살아가다가 열 사나흘 밤하늘을 보면 삶은 제자리를 도는 허기진 춤사위에 불과할 뿐이라며 문득 가도 가도 막히는 남쪽 길을 더듬고 있지는 않나요.
달이 떠오르는 모습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섬처녀들의 꿈이자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는 매김 소리는 땅과 하늘을 잇는 아름다운 주문입니다. 달밤의 아름다운 정취와 우리 민족의 흥을 오롯이 담아낸 남도의 ‘강강술래‘.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은 이 강강술래는 우리나라 서남부 지방에서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널리 행해지는 민속놀이 입니다. 특히 음력 팔월 한가윗날 휘영청 솟아오른 밝은 보름달 아래 마을 여자들이 모여 둥글게 손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밤새 춤추고 노래합니다.
강강술래를 할 때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서서 앞소리를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춥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지만 어떤 강강술래든지 한 사람의 설소리꾼이 있어서 이 사람이 목청을 가다듬어 멋지게 노래를 부르면 이것을 신호로 한 사람, 두 사람 차례로 나와 손을 잡고 천천히 돌면서 놀이를 시작합니다. 요즘에 두세 연륜이 깊은 여성들이 설소리를 합니다. 강강술래는 그 고을의 공동체 정신을 오롯하니 담아내 왔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더 풍요로운 꿈을 키웁니다. 손에 손에 전해지는 그 온기를 통해 놀이판에선 아무런 높낮이가 없었습니다. ‘청 청 청어엮’기도 하고 말입니다.
놀이를 하는 사람은 20∼30명, 마을마다 놀이가 성행했습니다. 동네마다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지금은 다리나 마당이 공간의 열린 공공성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대신 집집마다 자동차들이 점유했습니다.
강강술래 놀이에서 사내들은 처음에 쑥스러워서 선뜻 놀이에 들어오지 못하다가도 흥이 오르거나 먼저 놀이를 하는 사람이 손을 잡아 끌어대면 사양하다가도 뛰어들어 놀게 마련이었습니다. 얼마쯤 지나 설소리꾼이 노래를 바꾸고 메기는 속도가 빨라지면 그에 맞추어 놀이하는 사람의 발걸음도 빨라집니다. 서로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발에도 힘을 주고 돌면 그때부터 뛴다는 신호로 설소리꾼이 먼저 뛰기 시작하여 차례차례 뛰어 놀이를 하는 모든 사람이 뜁니다. 이렇게 빨리 돌고 천천히 돌면서 강강술래 놀이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며 모두가 흥겨워집니다.
강강술래를 순수 우리말로 여기는 사람은 ‘강강’은 ‘동그라미’로, ‘술래’는 ‘돈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진도에서는 ‘가흥가흥 수운래’로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진도 동북방향 가흥골의 부흥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강강술래 놀이는 또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 수가 많아 보이도록 부녀자들에게 떼를 지어 모닥불을 피워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됐다는 구전도 내려옵니다. 녹진 망금산 중턱에는 지금도 강강술래터가 남아있습니다. 진도의 신식 처녀들인 진도실고여학생들이 수 년전 이 강강술래로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전라남도 대표로 경연에 나서 대통령상을 받았답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데는 전통문화인 동시에 살아 있는 문화로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자연·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조해온 각종 놀이방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진도강강술래는 진도아리랑과 달리 김승희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도 아리랑은 생명과 욕망의 리비도(성적 열락)를 마음껏 발산합니다. 정선 아리랑이 애상적인 멜랑콜리의 노래라면 진도 아리랑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붙잡아라. 시인 호라디오스)'의 노래다고 선언합니다. 진도 여인들은 겉으로는 욕망 예찬인 것 같아도 속으로는 소멸과 시간에 대한 슬픈 저항을 담는다 하네요.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며/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나” “세월아 네월아 오고 가지를 마라/ 아까운 이내 청춘 다 늙어 간다” 같이 시간에 대한 성찰과 시간에 맞서 쾌락을 탐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진도강강술래는 이와 달리 원망과 욕망의 카오스를 달빛으로 씼어냅니다. 그 연원도 훨씬 앞섭니다. 달빛이 온 몸에 스며들 때 열락의 감염은 매우 자의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충무공의 명량해전 전설을 떠올리는 어떤 진법의 형태를 내보입니다. 섬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오히려 진도 섬 처녀들의 놀이는 자유분방하고 포용성을 갖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다산성이 깃든 것은 물론이지요.
‘강강술래’는 결코 진부한 옛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명의 기원과 발흥을 느끼고 인류애의 깊고 뜨거운 전형을 찾아야 합니다. 달무리와 성숙한 여인의 젖가슴을 닮은 지상의 빙빙 도는 원무. 모든 구성원들은 제의를 올리는 천녀가 됩니다.
‘캉캉’보다 훨씬 멋스럽다. 요즘 아이들도 여럿이 모이면 자연스레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돌아가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강강술래의 노랫말을 익히고 부르고 놀 수 있다면 흥미로운 놀이이자 축제 한마당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올 한가위에는 모처럼 내 고향 진도를 찾아가 동네강강술래를 합시다! 서러움도 외로움도 못 다한 사랑까지도 욱신욱신 밟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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