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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25-09-22 10:10 (수정일: 2025-09-24 10:28)

제목 진도의 만호길을 찾아서(1)-> 새로운 관광로가 되길 바랍니다
작성자
김명수
조회
260

진도 만호길을 찾기 위해 1917년(1910~1930년)경 진도 지도를 올립니다. 참고 하세요.

진도 만호의 역사

서론

“만호(萬戶)”는 고려 말 원나라의 군사 제도를 받아들여 설치된 직위로, 만호부(萬戶府)를 관할한 장수였습니다.

고려 말에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수군 지휘관으로 제도가 정착합니다.

조선 초기부터는 수군진(舟軍鎭)을 설치하고, 이곳을 지휘하는 수군 만호가 배치되었고.

조선시대의 군사 체제에서 “만호(萬戶)”고 종3품에서 정4품 정도의 무관으로, 해당 진성을 지휘하면서 해상 방어, 군선 관리, 병력 훈련을 맡아. 수군 진영을 지휘하는 중요한 직위였다. 진도는 서남해안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려시대 삼별초 항쟁의 중심지였고, 조선시대에도 전라우수영 체제 안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에 진도만호의 역사적 의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본론

진도는 전라도 서남 해안의 길목에 위치하여,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잦은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수군진이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진도읍성을 중심으로 한 내륙 방어. 해상 방어의 요지인 금갑진성(金甲鎭城), 남도진성(南道鎭城), 그리고 후일 전라우수영이 설치된 우수영 등과 긴밀히 연계되었다.고. 이미 진도에 수군 진영이 마련되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진도 만호 직무는

해상 방어: 왜구 및 외적 침입 방어.

군사 관리: 군선(戰船)과 군졸 관리, 훈련 감독.

행정 협조: 진도군수와 협력하여 지역 방어 및 치안 유지.

지휘 체계: 상급자인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의 통솔을 받으면서도, 지역 내에서는 독자적으로 군령을 행사.

진도 만호의 교류와 역할

상위 기관: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행정 파트너: 진도군수
군사 협력: 해남, 강진, 장흥, 완도 등 인근 수군진과 협동 작전 수행.

진도 만호는 단순히 한 진성을 지키는 지휘관이 아니라, 전라도 서남해역 전체 방어 체계의 중간 지휘선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략적 중요성 진도는 서남해의 관문으로, 조선의 해상 교통과 국방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만호는 이를 지키는 핵심 장수로서, 국가 방위에 기여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수군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진도의 각 진성과 만호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었다.

진도는 우수영등 중심으로 전라도 수군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만호는 지역 방위에 결정적 기능을 했다. 오늘날 진도의 옛 군사도로를 만호가 진도 군수와 협력하기 위해 왕래하는 “만호길”이라 부르는 두 만호길이 존재하였다, 당시 만호가 순찰하고 지휘했던 군사로가 지역 문화유산으로 전승되어 있어야 되는데, 진도는 아쉽게 잊혀져 가고 몇몇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있다.

두 만호길을 간략하게 나열하면

진도읍 남문을 출발하여, 하나는 금갑진성으로 가는 만호길로 진도읍성남문망해루(望海樓)->남천교->왕무덤재->침계. 가단, 창포->만길재->나팔재->댕기재-> 금갑진성으로 가는 (약 14km, 3시간 30분)길이다
진도읍성 남문 망해루위치(현 지도와 1917년 진도 비교). 망해루: 누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곳.

진도 옛 남천교
그 자리에 지금 전남병원 앞 새롭고 큰 다리가 새로 만들어 졌습니다.  

두 번째 만호길은 진도읍성남문(望海樓)->남천교->칠전->중굴재->모싯굴재->봉상->송월->용굴동재->백동->상골재->동령계재->남도진성으로 가는 (약 22km, 도보 5시간 30분) 길이다.
진도 옛지도를 보면 두 만호길이 어렴풋이 나옵니다

두 만호길을 1917년 지도를 토대로  현 진도 지도에 그려 봅니다.

두 만호길은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진도 남서 해안 방어를 지휘하기 위해 사용하던 공식 군로이며, 만호와 병사들이 통행하던 군사·행정로이자, 진도 사람들이 힘겹게 걸었던 생활로였다. 따라서, 만호가 행차할 때는, 마부와 여러 수행원들은 길이 멀고 굽이굽이 언덕길이라 힘이 들었다. 19세기 말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이 탄생하였고. 진도까지 구전하여 와서 수행원들은 이를 달래기 위해서 아리랑에 문경새재 구절에 이들은 진도읍성에 여러 고개길이 힘이 들어 문전새재(진도남문에서 진성까지 가는 여러고개 길)라는 걸맞은 구절을 바꾸어 불렸다.

결론

진도 두 개의 만호는 고려 말 몽골식 제도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직위로, 조선시대에는 수군진을 지휘하는 장수로 변모하였다. 진도는 전라우수영 체제의 핵심 지역이었고, 만호는 진도읍성·금갑진·남도진·우수영 등과 연계하여 해상 방어와 치안을 담당하였다. 그 역사적 의의는 단순한 군사 방위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진도의 역사·문화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잊혀지고 있는 만호길을 되찾아 우리들 옆에 두고. 현 시대에 맞게 건강 웰빙길로 개발하여 관광지로 변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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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