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9-02-21 16:42

제목 [월간조선 3월호] 전남 진도군의 중국 기업과의 이상한 MOU(양해각서) 해부
작성자
김익중
조회
1672

MOU는 지자체장의 ‘정치적 치적 쌓기’용인가?
전남 진도군의 중국 기업과의 이상한 MOU(양해각서) 해부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 1000만 평 크기 차이나타운이 건설된다!… 지역민 술렁이게 한 ‘가짜뉴스’의 裏面
⊙ 진도군-중국기업 MOU 과정 살펴보니, 동네 복덕방 계약보다 허술
⊙ 중국기업의 실체는… 사업자등록증, 사무실도 없는 유령회사?
⊙ 단체장 치적 쌓기용 ‘묻지 마’ 양해각서, 피해는 결국 주민들 몫
 


대한민국 지리의 좌측 하단 맨 끝. 지도상 ‘호랑이’의 발톱 부분에 위치한 진도군. 인구는 약 3만명이지만, 땅은 제법 크다. 360km2(1억 평)로 서울 면적(605.21km2)의 절반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큰 섬. 올 초부터 이 섬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진도가 중국에 팔린다?

바로 ‘한 중국기업이 진도에 17조원을 투자한다’는 소문이다. 17조원이면 진도를 살 수도 있는 금액. ‘진도가 중국 땅이 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자연히 지역민들은 술렁였다.
 
  의신면에 거주하는 주부 김현정씨는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 얘기를 들었다. 차이나타운과 중국대학까지 설립한다더라. 제주도 내 중국인 범죄율이 어마어마하던데, 남 얘기가 아니게 됐다. 애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진도군 진도읍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게다가 3년 거주한 중국인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까지 준다더라”면서 “이러다 대한민국이 중국의 속국(屬國)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지난해 12월. 진도군 임회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A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중년의 남성이 대뜸 ‘임회면 바닷가 앞 토지가 있느냐.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어오더라.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진도항에 대규모 중국 자본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투자를 하려 한다’고 하더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역 내 해외자본 투자, 개발 이슈는 항상 있어 왔기 때문이다. 모노레일이다, 케이블카다, 몇 년 전부터 협약만 맺어놓고 지지부진한 사업이 어디 한두 개더냐.”
 
  그러던 얼마 후, 지역 내 친목모임에 간 그는 “이번에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A씨는 “심지어 중국과 진도 사이에 해저터널을 뚫는다는 얘기까지 들리더라. 하긴 17조원이면 무리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일부 지역민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단체인 진도군발전협의회 김성훈 회장은 “자본이 한 번 유입되면 문호개방은 시간문제다. 중국 자본인 데다 (자본의) 출처가 불확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다수 군민의 우려감이 상당히 큰 상태”라고 전했다.
 
  이들의 걱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청와대 국민게시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게시판에 올라온 관련 청원은 10건 이상에 달한다. 게시물당 많게는 1500명이 추천을 눌렀다.
 
  지역민들의 동요가 거세지던 지난 1월 18일. KBS는 “‘가짜뉴스’에 진도군 지역사회 술렁”이라는 뉴스를 보도했다. “진도군과 중국기업이 MOU(양해각서)를 맺은 건 사실이지만, 차이나타운 등 구체적인 내용은 오간 바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MOU를 맺은 건 사실”이라는 점이다.
 
 
  <b>정말 ‘가짜뉴스’일까?</b>
 

이동진 진도군수와 진도를 방문한 중국기업 측 관계자가 찍은 기념사진. 사진=온라인 캡처
  우선 소문의 근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추적해 보니, 진원은 지난해 9월 작성된 한 소규모 매체의 온라인 기사였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기사가 ‘근거자료’로 첨부됐다. 엄밀히 말하면 근거자료는 이 기사밖에 없다. 기사는 200자 원고지 약 20매 분량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는 제주도였다. 향후 진도가 제2의 제주도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계 홍콩그룹인 BP그룹이 중국철도건업주식회사 및 진도군과 함께 진도 지역에 17조를 투자하는 MOU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세부적인 투자 계획도 명시했다. “군내 1000만 평 부지를 개발할 것이며, 차이나타운과 중국대학을 건립하고, 리조트를 비롯해 항만개발, 전기차, 바이오 및 의료, 미용분야, 대학설립 등 다양한 사업도 펼치고, 특히 진도를 잇는 고속열차(SRT·Super Rapid Train)도 개통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동진 진도군수와 중국기업 관계자들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도 실었다. 이들 뒤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는 ‘BP그룹 등의 진도군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17조원은 천문학적 금액이다. 국내에 이 정도 규모의 해외자본이 들어온다는 건 ‘국가적 이슈’다. 그런데 이 기사 외에는 어디에서도 투자계획이 보도되지 않았다. 기사를 쓴 기자 J씨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취재배경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J씨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를 늘어놨다.
 
  “BP그룹 대표로부터 직접 투자 계획을 들은 것으로, 기사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단독 취재였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 안 나온 것이다. BP그룹은 연매출 30조의 대기업이고, 존재가 명확한 단체다. 다만 이 기업이 진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투자도 함께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본격적으로 진행될지는 모른다. 혹시 이 건으로 기사를 쓸 거라면, 그러지 말아줬으면 한다. 안 그래도 문의전화가 많이 오는데, 이 내용이 재생산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검색해 보니, J 기자는 몇 년 전에도 이 회사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기업의 전망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b>“아무 내용 없지만, 보여줄 순 없어”</b>
 
  진도군청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중국 MOU 관련 건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하자 “담당자가 부재중이니 오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기다려도 회신이 없어 한 차례 더 전화해 메모를 남겼다. 다음 날이 돼도 연락이 없어 다시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비로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속 시원한 답변은 아니었다. 군청 관계자의 말이다.
 
  “MOU를 체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협약만 하고 구체화된 내용은 전혀 없다. 시중에 나도는 1000만 평, 17조원, 차이나타운, 중국대학 등의 내용은 모두 적시된 내용이 아니다. 그저 상호 간 발전적으로 협약을 해나가자, 하는 내용이 전부다.”
 
  ― 중국기업 측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밝힌 상태다. 동상이몽인 건가.
 
  “우리와는 구체적으로 얘기 나눈 바가 없다.”
 
  ― 그렇다면 양해각서를 보여달라.
 
  “기업 쪽 입장도 있고… 공개는 곤란하다.”
 
  ―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다면서, 왜 못 보여주나.
 
  “곤란하다. 양해 바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 지역 군의회 의장 A씨에게 이 상황을 물어봤다. A씨는 “양해각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떳떳하다면 안 보여줄 이유가 없다. 보아하니, 조용히 MOU를 맺고, 단체장 치적 쌓기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관심이 폭증하니 당황하는 모양새다. 아마 군청 입장에서는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길 바랄 거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해외기업이 제 발로 지자체에 찾아와서 MOU를 체결하는 경우는 90% 이상이 사기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지자체 MOU는 믿을 게 못 된다.”
 
  정말일까. 투자 의사를 밝힌 ‘BP그룹’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b>BP그룹 홍콩 본사에 대해 알아보니…</b>
 
홈페이지에 기재된 BP그룹의 한국사무소 주소지. 해당 건물 관리인은 “그런 기업은 입주한 적 없다”고 했다. 사진=박지현 기자
  앞서 J기자에 따르면, BP그룹은 연 매출 30조원의 대기업이다. 본사는 홍콩에 있으며, 한국에도 사무소가 있다. 총괄 회장은 교포인 이모씨이며, 한국사무소 대표는 하모씨다.
 
  우선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영문과 한글로 기업 소개를 꽤 구체적으로 해놨다. 하단에 한국과 홍콩의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한국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음이 중간에 계속 끊겼다. ‘진도 투자 진행 상황의 건’으로 메일을 보내봤다. 5분 만에 반송됐다. 홍콩 본사에 메일을 보내도 마찬가지로 되돌아왔으며,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한국사무소의 주소지는 가산동의 J빌딩 4층. 해당 빌딩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봤다. 4층에 BP그룹이라는 회사가 있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그런 회사는 없다. 입주한 적도 없다”고 했다.
 
  지난 2017년, BP그룹은 중국 항저우에서 ‘중소기업박람회’를 개최했었다. 이 박람회의 홍보를 담당했던 대행사에 전화를 걸어봤다. 대행사 관계자는 “박람회 기간 동안 짤막하게 홍보를 맡은 게 전부라 현재 BP그룹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박람회 직후 직원들이 모두 퇴사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게 “한국사무소 대표인 하모씨를 만나봤느냐”고 물었더니, “2017년에는 한국사무소 대표가 하씨가 아니었다”고 했다.
 
홍콩 현지 바이어 서칭 전문가 S씨가 보내온 BP그룹의 홍콩 주소지 사진. 몽콕 거리에 있는 낡은 쇼핑센터인데 확인 결과 이곳에도 BP그룹은 입주해 있지 않았다. 오른쪽은 건물의 내부 모습. 사진=S씨 제공
  정체가 갈수록 궁금해졌다. 과연 홍콩에 있다는 본사는 실체가 있는 걸까. 홍콩 현지에서 바이어 서칭 전문가로 일하는 S씨에게 기업조회를 부탁했다. 그의 말이다.
 
  “정유사업이 메인이라는데, 화장품, 전기차, 교육, 다리건설, 금융 등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는 것들을 사업영역으로 가지고 있다. 영국에 ‘BP’라고 대형 정유회사가 있는데, 기존 대기업 이름과 비슷하게 지어놓고, 실체가 없는 영업을 하는 곳 같다. 우리로 치면 ‘삼성○○○’과 같은 이름을 지은 거다. 연 매출 30조라면서 바이두(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에서도 전혀 검색이 안 되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홍콩 대형 신문사)에 단신으로도 보도된 적이 없다. 한국의 사업자등록증 격인 영업집조(營業執照)도 검색이 안 된다.”
 
  S씨는 이어 “결정적인 건 홈페이지상 주소지인 몽콕의 건물을 찾아가 봤는데, BP라는 이름의 사무실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S씨는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회사의 주소지인 한 건물의 전경이다. 그곳은 낡은 쇼핑센터였다.
 
  며칠 후, S씨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그는 “수소문 끝에 한국 내 중소기업 관계자로부터 BP그룹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면서 “대대적인 세무조사로, 5000억원 정도 세금을 물어야 할 처지라고 한다”고 말했다.
 
 
  <b>지자체 MOU에 웬 ‘중매쟁이’가…</b>
 
  종합해 보면, BP그룹은 실체가 없어 보였다. 이 내용을 확인하고 군청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 MOU를 맺은 BP그룹은 어떤 기업인가.
 
  “오일트레이드 기업으로 알고 있다.”
 
  ― 재무상황은 정확히 파악했나. 신뢰할 만한 기업이라는 걸 무슨 기준으로 판단했나.
 
  “그게…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재무사정이 안 좋으면 앞으로 투자가 성사되지 않겠지….”
 
  ― 기업조회도 안 하고 덜컥 MOU부터 맺었다는 건가.
 
  “구체적인 내용은 홍보계를 통해 듣는 게 좋겠다. 전화를 하라고 하겠다.”
 
  ‘꼭’ 전화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군청에서는 회신이 오지 않았다. 군청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군의회에 협조를 구했다. 의회 측은 “빠른 시일 내 군 관계자를 소집해 자초지종을 파악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의회 핵심관계자로부터 MOU의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네 사람들끼리 손가락 걸 듯’ 체결한 양해각서였다.
 
  ― 군청에서 뭐라고 하던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MOU를 체결하긴 했는데, 구체적으로 적시한 건 없다고. BP그룹 측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진도에 한번 와서 둘러보라’고 했단다. 그런 다음 앞으로 잘 해보자, 구체적인 건 차차 얘기하자면서 MOU를 맺었단다.”
 
  ― BP그룹 측에서 제안한 최소한의 투자 방향이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게 없었단다. 그냥 ‘투자할 수 있게 해달라’가 전부였다고.”
 
  ― 진도군과 중국기업은 어떤 루트로 서로를 알게 됐나.
 
  “소개를 받았다고 한다.”
 
  ― 누가 소개했나. 법인인가.
 
  “개인이다. 우리나라 사람인데, 그 사람이 진도군청에다 ‘투자 기업을 연결해 줄 테니까 한번 만나보라’고 했단다. 투자를 한다고 하니까 군청은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MOU를 체결한 거다. 외국인들이 진도에서 투자자들 모집한 다음 한탕 해먹고 중국으로 떠버리면 어떡하려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MOU를 체결했냐고 했더니, 담당자가 그러더라. ‘하이고… 군 입장에서, 예를 들어 장가가려고 하는데, 중매자가 딱 나타나서 ‘한번 만나봐라’ 하면 안 만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래서 한번 만나봤더니 투자하고 싶다고 하는데, ‘하지 마라’ 할 건 없잖아요. 그래, 그럼 돈 갖고 와라, 이렇게 얘기한 상태예요’라고 하더라.”
 
  ― 허 참… 그래서 ‘중매자’라는 사람은 누군가.
 
  “나도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누군지는 말 안 해주더라. 그런데 짚이는 사람이 있다. 만일 그 사람이 맞으면 전혀 믿을 게 못 된다. ‘○○○자문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인데…. 전적이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도 해외자본유치 어쩌고 하면서 실체 없는 일을 벌인 적이 있다.”
 
  ― ‘양치기’ 중매쟁이 때문에 전 군민이 이렇게 술렁인 건가.
 
  “지금 모양새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아직 조금 더 지켜보자. 또 아나? 진짜로 투자할지.”
 
  ― 그들이 진도에 왔을 때 숙박과 식사, 기념품비 모두 군청에서 냈을 거 아니냐.
 
  “그렇다. 의회에서 투자마케팅과에 1년 예산을 세워준다. 보통 1억원 정도. 투자와 관련된 업무를 볼 때 그 예산을 쓸 수 있다. 우리가 출장을 갔을 때나 투자자가 진도에 방문했을 때나, 그 예산을 쓸 수 있다.”
 
  ― 결국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예산낭비도 이뤄지고 있는 건데.
 
  “이 MOU가 실체가 없다는 게 명확히 드러나면, 예산내역을 철저히 따지고, 군청에 책임을 강하게 물을 것이다.”
 
 
  <b>“지자체 MOU, 대부분 단체장 정치적 이익 위한 것”</b>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사실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MOU’라는 게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에서 MOU를 맺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막상 계약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배정환 한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기업 대 기업의 MOU에는 상호 간 (금전적) 이익이 강하게 얽혀 있지만, 지자체, 특히 군 단위라면 금전적 이익보다는 MOU를 추진한 단체장의 정치적 이익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MOU라는 게 당장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호 간 무언가를 도모해 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임기 중 업적으로 활용하기 유용하다는 것. 배 교수는 “예를 들어 ‘임기 중에 투자 유치에 힘썼다’는 말과 함께, 그 증거자료로 ‘우리 이렇게 MOU도 맺었지 않느냐’고 들이밀면, 설득력을 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구속력도 없고, 무산돼도 책임주체가 없는 MOU. 그렇다면 이렇게 부실하게 맺은 MOU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부실기업과 보여주기식 MOU를 체결했다고 치자. 특정 지역에 투자를 하겠다는 내용이라고 하면, 내부관계자가 미리 해당 지역에 땅을 사놓는 거다. MOU 발표로 지가 상승을 꾀하고, 땅을 되판다. 이후 한쪽에서 MOU를 파기한다. 그럼 비싼 가격에 땅을 매입한 사람만 피해를 보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피해자가 대부분 이해관계자와 거리가 먼 지역민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정부와 전북도가 미국기업으로부터 약 5조원을 유치한다는 내용의 ‘새만금지구개발 MOU’의 내부관계자였던 A씨는 이후 지역 내 소상공인 등으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가로채기도 했다.
 
  지자체의 이상한 MOU. 미리 알 수 있는 지표는 없을까. 배 교수는 “지자체에서 MOU 과정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없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정보공개를 하는 방향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지역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 자율 감시자의 역할도 함께 요구된다”고 말했다.⊙
 
<b>지자체의 ‘묻지 마’ MOU</b>
 
  <b># 사례1</b>
  경남의 한 지방. 신재생에너지 복합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위해 2010년 9월 미국 태양광 에너지 서비스 업체인 M사와 2013년 말까지 40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사업에 투자하기로 MOU 체결. 그러나 태양광 관련 시장이 침체되면서 2012년 3월 결국 무산됨. 경상도의 한 광역시도 2012년 5월 미국 태양광 업체 S사로부터 3억2000만 달러를 투자받는다는 MOU를 체결. 2013년 착공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
 
  <b># 사례 2</b>
  경북의 한 지방에서도 비슷한 일 발생. 이 지자체에서는 2012년 5월 한 식품업체와 이 지역에 900억원을 투자해 종돈(씨돼지)단지를 조성키로 하는 MOU를 체결. 당시 지자체는 단지가 조성될 경우 종돈의 유전자 개량과 육가공 사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이 사업은 주민 반발로 중단. 그럼에도 이 지자체는 이듬해 투자유치 실적에 이 내용을 포함시킴.
 
  <b># 사례 3</b>
  광역시 한 곳도 2015년 일본계 컨소시엄인 S사와 복합관광시설 건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으나 이듬해 사업이 무산. 이 지역에서는 사업 성공을 위해 지구 단위 계획 변경 등 다양한 특혜까지 주었으나 S사 측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철수. 인근 부동산만 들썩거리는 등 부작용만 불러온 대표적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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